의료선교 동지들과 배움을 나누며

다섯 번째 편지-기독교세계관과 니고데모의 안경

전도영 2008. 6. 23. 14:29

그동안 선교학에 입문하여 그 초입에서 몇 과목의 강의를 듣고, 또 책들을 읽는 동안 가장 새롭게 인식된 용어가 바로 기독교 세계관(또는 성경적 세계관)입니다. 우리가 타문화권에 가서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미션 퍼를 통해서도 익히 배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이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의 정립인 것 같습니다. 모르긴 해도 어떠한 형태로든 주님의 사역을 행하는 자라면 그 사역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나 이론보다는 더 우선적으로 뚜렷한 기독교세계관의 정립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제 경우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세계관이라는 용어를 듣지도 보지도 쓰지도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설령 언제 어디서 보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용어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탓에 그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때문이겠지요...

또한 그 같은 자세(기독교세계관의 정립은커녕 이해도 없이)로 단기선교를 다녔으니, 이는 방탄복도 입지 않고 전쟁터에 나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멀쩡히 살아 돌아왔으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뒤늦게 비로소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나니, 그간의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크리스천이 기독교세계관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고 사는 것은 마치 옷을 입지 않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과도 같은 수치스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앞서 보여드린 여러 리포트들 속에도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부분적인 언급들이 있었습니다만, 오늘은 신국원 교수님의 저서 <니고데모의 안경>을 중심으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이 책은 학교 과제를 위해 읽은 것은 아니고, 저희 교회의 협동목사이시며 총신대 교무처장으로 계시는 신국원 목사님께서 학교 입학을 축하하시고 자장면을 대접하시면서 선물로 주신 귀한 책인데, 최근에 읽고 보니 마침 교리적 차원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 여러분들께도 소개해 드리는 바입니다.


이 책은 <쉽게 풀어쓴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을 만큼 기독교세계관에 대해 알기 쉽게 풀이해 놓은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기독교 세계관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따라 세상을 보는 안목>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니고데모처럼 천국을 보는 안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음 눈을 밝히사” 세상을 복음적 변혁의 비전과 소망으로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말씀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1-13)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1절부터 21절 사이에 니고데모와 예수그리스도의 대화가 시작되는데,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유대관원으로서 높은 지위에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도덕적인 문제나 죄의 문제가 없는 매우 선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선하던 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려면 거듭남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거듭남에 대해 동문서답을 계속합니다.


교수님은 이 말씀을 예화로 들어 “거듭나는 것은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온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안목을 거듭나게 하는 복음의 안경이었다. 훗날 예수님의 주검에 향품을 바르러 온 니고데모(요 19:39)는 이 안경을 쓰고 있었다.”며 서문을 통해 니고데모의 안경의 근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니고데모가 복음이라는 안경을 쓰게 됨으로써 비로소 거듭나게 되어 하늘나라를 보게 되고 예수님을 위하여 헌신하게 되었듯, 우리들 역시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니고데모의 안경을 쓰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또한 주님 주신 사명-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신 목사님은 제8장에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날이 수십 년이 넘은 신자가 아직도 왜 구속해 주셨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면 그것은 좋은 고백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것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구속은 새로운 삶의 질서요 소명이며 새로운 비전의 회복이다. 구원의 감격이 삶의 안목과 비전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구속은 선물인 동시에 소명이다. 이 소명을 실천해야 할 세상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고 회복되어야 할 세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세상을 위한 것이다. 성도는 이 일의 사역자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그러하듯 남녀 성도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재건이라는 소명을 받았다.”고 강조하고, 마지막 장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통해 니고데모의 안경을 쓴, 기독교 세계관을 정립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명과 사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며 완성을 기다리는 사람은 구속 역사의 동참자로 살아간다. 바른 비전을 가진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일하는 사명자로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신의 성품을 담는 하나님의 그릇이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도구이기를 소원하며 산다. 바로 여기에 제자도의 참 의미가 있다. 제자란 자기 자신만 훈련하는 이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자다. 하나님 나라는 특히 부르신 소명을 신실히 감당함으로써 더욱 가까워진다.”

이 말씀이야말로 제가 이 책을 여러분들께 소개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천국과 더욱 가까워지는 여러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니고데모의 안경>를 읽고 요지를 간단히 추려 파일로 올립니다. 참고하시고, 여러분들도 니고데모처럼 기독교세계관을 잘 정립하여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님의 소명을 받들어 우리 모두 ‘함께’ 주님나라 영광을 위하여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